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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주군왕에 대한 방송 시청소감

16-10-17 21:4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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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강릉김씨 시조 김주원공에 대한 시간여행 잘 보았습니다.
프로그램을 보면서 조금 아쉬운 점을 지적하고자 합니다.
유명하신 교수님의 자료준비로 재미있게 진행하신 점은 매우 좋았았습니다. 그런데 의문이 생기데요
김주원공의 집은 경주 북쪽 20리 지점에 있어 알천(북천)물 넘어서 왕궁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그 이야기는 사실과 다릅니다.
왜냐하면 선덕왕이 붕어한 일자가 정월 1월 13일 입니다 겨울인데 어찌 알천물이 넘을 수 있는지요? 궁금하지 않습니까.
왜 교수님들은 김경신(원성왕)이 주도한 승자의 역사를 이야기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삼국사기를 보시면 알수 있는데 전왕의
붕어 일자를 보시면 바로 궁금증 유발 할 수 있었는데요?
삼국사기에는 선덕왕과 김주원공의 관계는 족질(조카)라고하며 차기 왕위를 계승권자 한다고 하여 상재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김경신은 차재로서 당시 상대등(시중)이었고 친위 구테타를 일의켜서 왕궁을 장악하고 김주원 세력을 억압하게 되니
급하게 김주원공이 지금의 청송 주왕산 피했고 김경신(구테타) 세력과 대응하였으나 군사 및 식량 부족으로 인하여 오래가지 못하였고
(주왕산의 주왕굴 참조) 김주원은 할수 없이 목숨의 위협으로 벗어나고자 강릉 토호로 있는 모친의 생활 근거지인 옴기게 됩니다
그후 김경신(원성왕)의 추격군들은 강릉지역의 전방(발해세력) 전투주력군과 대응할려고 하니 왕위 찬탈에 대한 경주 지역세력의 거부감과
강릉지역의 전투주력군에 대한 부담감을 느끼게 되어 울진 평해 이북에 대해서 관리 할수 있는 명주군왕으로 봉하게 됩니다.
그 이후 김주원공의 인척 및 자손들도 주요 관직에 보임하게 되지요?
그러나 김경신은 화백회의 에서 선출된 왕위를 밀어내고 자신의 구테타를 합리화 하기 위해서 힌 복두를 쓰고 12줄의 가야금의 메고
천관사(신라 김씨들의 사당과 관련된 사찰)의 웃물로 들어간다는 이야기와 북천물에 제사를 지내서 강물을 범람했다는 설화를 만들어 내서.
자신이 하늘의 뜻에 따라 왕위에 올랐다는 합리성과 정당성을 부여 한것 입니다. 정월인데 어찌 강물이 넘을 수 있겠습니까
(785년 이후 정월에 관한 삼국 사기 기록을 찿아보면 알수 있습니다.) 이는 한번정도 생각해 볼수 있는 이야기가 아닌지요
재미나게 방송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실은 사실에 입각해서 방송하면 더욱 좋치 않습니까.
이점이 아쉽게 느껴집니다. 방송 소감입니다.
김래성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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