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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는 목마름으로' 저항시인 김지하 별세

2022.05.09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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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송일자
    2022-05-09
[앵커]

박정희 정권시설의 대표적인 저항시인
김지하 선생이 어제(8) 별세했습니다.

'타는 목마름으로', '오적' 등
굵직한 작품으로 한국 민주운동사에
족적을 남겼는데요..

김지하 시인의 삶을
이병선 기자가 짚어봤습니다.

[리포트]

(BGM : 타는 목마름으로 - 김광석)

권위주의 군부 정권의 엄혹한 세월에 맞서
날카롭게 말을 벼려냈던 시인 김지하.

그의 굴곡졌던 여든 한 해가
원주에서 저물었습니다.

그가 교류했던 정치권 인사들과
인생 후반부를 함께 했던 사회운동가들이
빈소를 찾아 고인의 가는 길을 추모했습니다.

[이경국 / 무위당사람들 고문, 고인의 동료]
"그 암울했던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의 꽃을
장엄하게 키운 선각자가 오늘 죽은 거야"

1969년 등단한 김 시인은 이듬해
<사상계>에 발표한 담시, '오적'을 통해
문단의 신성으로 떠올랐습니다.

국회의원과 재벌, 장성 등 사회지도층을
개와 원숭이에 빗대 그들의 부정부패를
풍자한 이 시로, <사상계>가 정간되고
관련자가 투옥되는 등 필화를 입었습니다.

이후에도 민주화운동으로 도피와 투옥을
반복하던 그는 1974년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됐다는 이유로 수감돼 사형까지
선고받았습니다.

그 뒤 국제적인 구명운동으로 10개월 만에
풀려났지만, 사건의 진상과 관련된 글을
발표했다가 재수감돼 6년 간 옥고를 치르고
1980년 풀려났습니다.

2013년 재판부는 재심을 통해
김 시인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故 김지하 (2013년 무죄 선고 당시)]
"아무 생각이 없어요 내가 아주 도를 통한
모양이야. 기쁜 것도 아니고 슬픈 것도 아니고"

80년대 이후 장모인 박경리 선생,
아내 김영주 전 토지문화재단 이사장과 함께
원주에서 지낸 김 시인은 장일순 선생의
생명 사상 운동에 영향을 받기도 했습니다.

[故 김지하 (2001.12.05 MBC 뉴스데스크)]
"그 분이, '깊은 골짜기에 숨어 피지만
천리 밖에까지 그 향기를 전하는 데에
인색하지 않아야 한다' (말씀하신) 그 말이
잊혀지지 않죠"

1991년 조선일보에 기고한 칼럼 때문에
진보진영으로부터 변절했다는 오명까지
뒤집어썼던 김 시인.

10년이 지나 유감을 표명했고,
가족 모두가 이 사건 때문에 정신적으로
큰 고통을 받았음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이후로도 2012년 박근혜 당시 대선후보를
공개 지지 선언하는 등 사회적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하지만 지난 2018년 시집 <흰 그늘>을 끝으로
은둔한 김 시인은 1년여의 암 투병 끝에
삶을 마감했습니다.

MBC 뉴스 이병선입니다. (영상취재 노윤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