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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비를 보고 들려주고 싶은 처음 겪었던 이별이야기(상당히 김, 각오해야 함 주의)

사연과 신청곡
19-12-16 05:5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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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y New Day!!

벌써 또 새로운 하루, 새로운 월요일, 새로운 오늘이 와버렸네요 :)

주말사이 모두들 감기는 걸리지 않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생각보다 높은 기온에 겨울인 것을 잠시 잊어도 좋을 날이었습니다.

 

 

그냥 오늘 저녁에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고나서 문득..

할 말이 생겨났는데 어디에 할까 하다가 홈페이지에 들어왔어요.

기특하게도, 저의 10년이 다 돼가는 노트북은 아직도 말을 잘 들어줘서

글을 쓸 수 있게 허락을 해줬네요^^

 

 

빨래 정리를 하다가 말고 멈춘 채널에서는 '연명/안락사'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어요.

저도 모르게 이런 무거운 주제에 집중을 하게 되었고요.

출연진과 게스트들은 이별의 순간을 경험한 사람들이었고, 이별을 준비하는 사람들이기도 했어요.

 

 

이별을 준비하는 사람...

어떻게 설명을 해야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로서는, ‘슬프지만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하고 싶어요.

조금 모순이 있는 것 같죠?

갑작스럽게 한 순간에 그 ‘흔한’ 인사조차 하지 못하고 떠나게 되는 것보다,

조금은 고통스럽고 아프겠지만 이별의 준비를 할 수 있는 귀한 시간을 선물 받은 선택받은 사람이라고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그 분들의 입장이 되어보지 못해서 감히 생각해 본 말이기는 하지만요..

인사를 했어도, 하지 못 했어도 후회와 그리움은 남겨진 사람이 짊어져야 할 몫이니까요.

그래도 남겨지는 이들에게 조금의 짐은 덜어줄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이 듭니다.

 

 

다시 본론으로 들어와서..

한국에서는 안락사와 존엄사라는 제도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있을 수 없는 일이었잖아요?

그런데 작년 초부터 ‘연명의료의향서’라는 제도가 시행이 되었다고 합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_ 나중에 나의 신체가 회복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을 때 연명에 관한 모든 치료를 받지 않겠다는 사전 동의서)

이 얘기를 들으니 뇌리를 스치는 일이 하나 생각이 나는데,

몇 달 전에 서류를 필요로 하여 관공서에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그렇게 많아 보이지도 않으셨던 어르신이

“연명신청서 작성하려고 하는데요~”라고 내방을 했던 것입니다.

같은 건물에 자리하고 있어서 잘못 찾아온 탓에 어르신이 했었던 말이 기억이 났습니다.

‘연명’이라는 단어가 바깥에서는 쉽게 들을 수 없었던 단어이기에 더 또렷이 뇌리에 남았기도 했고요.

그렇게 혼자 이별방법 중 하나를 준비하셨던 그 어르신이 불현듯 생각이 나기도 하네요.

 

 

스위스에서는 안락사가 합법적으로 허락된 나라여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가서 안락사를 선택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존엄사는 가능하나, 안락사는 현행법상 불가능)

존엄한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 어쩌면 정말 필요할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선택이 내가 될 수도 있고, 가족이 될 수도 있으니 말이죠.

 

 

병원의 중환자실에서는 환자들을 묶어둔다고 합니다.

그 이유가.. 고통 때문에 환자들이 뒤척이다 떨어지고, 뛰어내리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고통스러움을 겪고 나왔던 경험이 있다면,

정말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있어야 하겠다는 생각도 들기도 합니다.

 

 

어느 날 죽음이 나에게 찾아왔다...

누군가와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본 적이 있나요?

저는 그럴 날이 나에게 닥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해 왔었지만,

혼자 글로 적어내 얘기한 적은 있지만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어 본 적은 없던 것 같아요.

그런데 생각을 해보면, 가장 먼저 가족들과 이런 이야기를 나눠야 하는 게 맞다고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삶의 마지막 순간은 어떻게 마무리 할 수 있을 것 같나요?

아름다운 이별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것... 내가 나에게 하는 참 어려운 질문 같네요.

그런데 저는 한 가지 하고 싶은 게 있어요.

지금도 간혹 하고는 있지만,

저는 사랑하는 사람을 포함해서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손편지와 그 사람에게 주고 싶은 선물 하나씩을 꼭 하고 싶어요.

편지를 읽으며 좋은 기억뿐만이 아니더라도 나라는 사람을 기억해줬으면 해서요.

그냥 잊지 말고 조금만 그리워 해 달라는 말이기도 하고요^^

어쩌면 귀한 시간을 선물 받게 된다면 그 편지가 뜻밖에 유서(?)가 될 수도 있기는 하지만요^^;;

그러고 보면 언제가 될지 모르는 이별에 대비해 인생을 총정리 할 수 있는 시간을 갖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영원한 이별(죽음)에 대해 관대(?)한 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누군가가 떠나가는 게 아무렇지 않다는 얘기가 아니라,

언젠간 나도 떠나가게 될 건데, 그게 조금 빠르더라도 이해할 것 같다고 해야하나..

 

 

이별을 많이 겪었던 사람도 있지만..

저도 눈앞에서 이별을 두 번이나 해 본 이별 경험자이거든요.

대학교 2학년 때, 할아버지께서 암으로 먼 곳으로 가셨어요.

제가 태어나서부터 매일 아침, 점심, 저녁을 함께 하며 20년이 넘도록 한 지붕에서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작스런 암 선고에 2년 정도를 치료를 받으시다가 가셨거든요.

 

 

처음에는 소중한 시간을 부여받은 게 반년.. 이셨어요.

큰 병원에, 항암치료를 받으시며 힘들어 하셨고,

고비도 여러번 넘기시며 여기서 말했던 연명 치료들을 많이 받으셨어요.

위급할 때 구급차에 실려 병원행을 하셨고, 너무 아파하셔서 급할때만 쓴다는 마약류의 진통제도 돌아가시기 전에 맞으시기도 하셨고요..

그렇게 항암치료와 응급실을 다니시고, 생전에 회와 소고기를 참 좋아하셔서 엄마는 어떻게든 기운을 차리셔야 항암치료를 이긴다며

입맛 없어 밥을 안 드신다는 할아버지 밥상에 삼시 세끼를 소고기를 구워 올려 드렸어요.

그렇게라도 밥을 드셨던 할아버지는 혹시나 하는 가족들의 기대에 부응하듯 6개월이 아니라 2년을 더 같이 계시다가 가버리셨지만요..

 

 

지금 생각해보면 할아버지가 항암치료를 견뎌내며 더 같이 계셨던 게 행복했을지 아니면 그 시간이 고통스러웠을지

이제 와서야 물어보고 싶어졌어요.

그땐 얼마나 아픔이 아픔이고 고통이 고통이었을지 생각해 볼 겨를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전 그렇게 할아버지와 이별을 준비할 수 있었던 시간이 있어서 감사했어요.

할아버지가 입원을 하면 매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주전부리나 간식을 사서 들렀었고,

퇴원을 하는 날이면 제가 시간적인 여유가 많았을 때라 할아버지를 모시고 본가에 갔었어요.

제가 모시고 가는 날에는 항상 할아버지가 사 줄 거라며 막국수나 소고기를 먹자고 했었고요.

그리고 처음으로 제가 사는 집에도 모시고도 왔었어요.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지만 말이예요.

정말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 할아버지 한 마디가 있었어요.

“무슨 손님이 이렇게 많이 왔노~”라며.. 저희집 현관엔 언니와 같이 살았을 때라,

신발이 여러 켤레 나와 있었거든요^^ 아직도 신발을 정리하지 않았을 때는 할아버지 한 마디가 떠올라서 신경써서 정리를 해두고는 합니다.

 

 

그렇게 기적이라는 것이 있어 나아지는 줄 알았던 할아버지의 병환이 갑자기 나빠지셨어요.

병원에서의 호출에 이번에도 이렇게 넘어가실 줄 알았는데.. 넘어가는가 싶었습니다.

그렇게 정정하시고 허리 하나 굽지 않으셨던 할아버지가.. 점점 힘이 드셨는가 봅니다.

대답도 잘 하지 않으시고, 엉뚱한 대답을 하시고.. 깜빡깜빡 하신다고..

 

 

그런데 참 이상한 게.. 언니와 저는 그런 할아버지의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습니다.

갈 때면 “**왔노~”라며 음료수고 뭐고 자꾸 먹으라며 챙겨주셨던 정정한 모습만 보았을 뿐,

그리고 이별이 임박했을 때였나봐요.

여느 때와 똑같이 언니와 할아버지에게 갔을 때, 그 날은 할아버지가 말도 없으시고 가만히 있으시길래,

언니가 휠체어를 밀어드릴테니 바람이라도 쐬고 오자고 했어요. 할아버지도 그러자고 하셨고요.

휠체어를 타고 병동을 돌며 할아버지가 저기도 가자며 손가락으로 가리켰고, 그렇게 몇 바퀴를 돌았어요.

저는 그 뒤를 계속 뒤따라 걸었고요.

 

 

그렇게 보름정도가 흘렀을까요?

또 다시 병원에서 호출이 왔어요.

또 이렇게 고비를 잘 넘기실 줄 알았어요.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 이별을 할 시간이었어요.

시간이 지나도 숨이 가빠져 올 뿐, 눈을 꼭 감고 뜨실 생각을 하시질 않았어요.

그리고는 기침의 횟수가 많아졌고, 의사 선생님 말로서 피가 응고가 되어 기도를 막을 수 있으니,

기침을 하면서 뱉도록 유도하는 게 좋다고 하여 연신 힘겹게 기침하는 할아버지에게 기침이 나오면 뭐든지 뱉어내라고 당부하며,

핏 덩어리를 받아내고 등을 쓸어내리며 한참을 긴장하듯 ‘제발..’이라는 마음과 함께 한동안 등을 두드렸어요.

그런데 그 순간, 할아버지가 내 뱉은 한 마디로 이제는 정말 보내드려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만지는 것 조차 너무 고통스러웠는지 할아버지는 “날 좀 내버려 둬”라며 손을 들었어요.

 

 

그렇게 정말 이별하는 시간을 갖었어요.

하나도 빠짐없이 할아버지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다 만나고 가려고 기다렸다는 듯이

마지막으로 눈을 잠깐 뜨셨다가 눈에 담으시려는 듯 지그시 바라보시고는 감으시더라고요...

 

 

그렇게 조금 시간이 흘렀을까요?

적막과 함께 심장 뛰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일정해진 기계음에서 그렇게 이별을 통보받았습니다..

 

 

마지막까지도 손이 참 따뜻했는데........ 그게 이별이라네요?

 

 

이상하죠.. 그렇게 따뜻했는데, 그런데 그게 이별이라니...

어떻게 이렇게 사람이 헤어질 수 있는거지...?

 

 

 

할아버지에게 처음으로 자전거 보조바퀴와 이별하는 법을 배웠는데,

이렇게 할아버지에게 처음으로 사람과도 이별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 후에 알았지만,

의사 선생님이 항암치료 하시다가 이렇게 가시는 분들중에서 몸에 손만 대도 너무 아파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가시기 전에도 아파하시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알았더라면 덜 아프게 보내드릴 수 있었을까요.. 아무 손도 쓰지 않고 말이죠.

 

 

 

 

생명 연장이 최후의 효도라고 생각했던 지금보다 더 옛날의 마음들..

하지 않으면 자식 입장에서 마음 편한 사람은 없을 것이었기에 가족의 생명을 결정하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은 아닐 거라 생각합니다.

그것은 분명히. 아마도. 누구도.

 

 

남아있는 이들이 짐을 덜어내는 방법으로 택하는 것 중의 하나도 연명이지 않나 싶습니다.

이렇게라도 할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 다 해보는 것.. 그 것에는 ‘혹시나...’라는 기적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고 싶었기 때문이지 않을까요.

그 믿음이, 그 희망이 더 행복하게 만들었을지, 더 고통스럽게 만들었을지는 영영 물어볼 수는 없지만........................................................

 

 

 

 

 

 

 

살아있는 모든 것에는 시작이 있고 끝이 있단다

그 사이에만 사는 거지

이 세상은 살아있는 것들로 가득차 있지

얼마나 오래 사는가는 저마다 다르단다

하지만 살아있는 모든 것들처럼 앓기도 하고 다치기도 하지

대개는 다시 낫지만 너무 많이 다쳐서 너무 많이 앓아서 더 이상 못 사는 때도 있지

슬프지만 살아있는 모든 것이 그런 걸

사람도 그런 거야 그것이 사람의 수명이란다

수명이 아무리 길어도 수명이 아무리 짧아도

시작이 있고 끝이 있는 것은 모두 마친가지란다

그 사이에만 사는 거지

이 세상 모든 것이 다 그렇지

풀도, 사람도, 새도, 물고기도, 토끼도, 아주 작은 벌레까지도

 

 

이 세상 어디에서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