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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R)일제 검사 수사 자료에 독립운동가 후손 관심

2019.11.05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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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송일자
    2019-11-05
◀ANC▶
3·1운동 당시 함흥지방법원에 근무하던
일본인 검사의 수사기록에는
양양지역 만세운동 기록이 포함돼 있습니다.

양양 만세운동은 물론 영동지역 3·1운동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큰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김인성 기잡니다.
◀END▶
◀VCR▶
최근중 광복회 강원영동북부연합회장은
강릉에서 3·1 만세운동을 주도한
최선재 선생의 손자입니다.

지난 1978년부터 14년 동안 전국을 뒤져도
할아버지의 만세운동 관련 자료를 못 찾았지만,
당시의 매일신보 기사를 통해 뒤늦게
할아버지의 서훈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INT▶ 최근중/광복회 강원영동북부연합회장
"문서보존기록소 가도 함흥에 있는 건 못 찾는다 하는데 뭘 어떻게 찾느냐 하고 얘길 했더니 그때 당시의 신문, 신문이 있으니까 좀 찾아보십시오..."

1919년 4월 양양군 현북면 기사문리 만세운동은 사망자만 9명이 나올 정도로 치열하게 전개됐습니다.

엄청 큰 사건이었지만 당시 만세운동을 주도한 사람들이 모두 독립운동가 서훈을 받은 건 아닙니다.

((이음말=김인성 기자)
3·1만세운동 당시 이곳 양양 만세고개에서
죽거나 다친 20명 가운데 독립운동가 서훈을
받은 사람은 5명에 불과합니다.

만세운동으로 투옥된 수형기록, 재판 결과가 담긴 판결문, 고신문에 실린 기사 등
독립운동 행적을 문서로 입증해야 하는 과정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당시 만세운동을 주도한 황선주 선생의 경우 지금의 서대문형무소, 당시 '경성복심법원'의 판결문이 남아 서훈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INT▶ 황세구/독립운동가 황선주 선생 손자
"자료가 없어서 좀 고통스러운데 일본, 북한, 중국 어느 지역에 가서 자료를 확보해서 그 억울한 사람들, 후손들의 명예회복을 빨리 시켜줬으면 좋겠습니다."

항일 독립운동 관련 자료가 많이 남지 않은
영동지역의 경우 이번에 발견된 이시카와 검사의 조사 자료와 같은 다양한 자료를 찾는 일이 시급합니다.

MBC 뉴스 김인성///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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