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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 잊혀진 독립운동가 박용만

2019.03.02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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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송일자
    2019-03-02
◀ANC▶
3.1운동 100주년인 올해 독립 운동가들이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현재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 독립 운동가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분들도 많습니다.

철원 출신의 박용만 선생도 그런 독립운동가중 한명인데, 고향인 철원 지역을 중심으로 그를 기리는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습니다.

이재규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END▶
◀VCR▶

우성 박용만 선생.

1881년 고종 18년에 철원읍 중리에서 태어난
그는 1905년 24살에 미국으로 간뒤 1913년 한인 최초의 사관학교인 대조선 국민군단을 창설하는 등
무장 투쟁에 집중했습니다.

이승만 안창호 등과 더불어 미국 한인 사회의 독립 운동을 주도했습니다.

상해 임시정부의 외무총장으로 임명됐지만,
노선의 차이로 부임하지는 않았습니다.

1924년 당시 조선총독부 총리인
사이토 마코토를 만난 이유 등으로
친일 의혹을 받다
1928년 의열단원이 쏜 총탄에 맞아
48년 생을 마감했습니다.

하지만 친일 의혹에 대한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고, 건국 공로를 인정받아 1995년 대한민국 대통령장에 추서됐습니다.

현재 그의 유해가 어디에 어떻게 처리됐는지도 명확치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그의 고향인 철원에서 그를 기리는 움직임이
생겨났습니다.

철원 독립운동 기념 사업회는 지난해 10월
서거 90주기 추도식을 열었습니다.

2016년에는 그의 생가 터로 추정되는 곳을 발견해 팻말을 하나 세웠습니다.

◀INT▶

하지만 재고증 결과 그의 생가 터는 이곳에서
수백미터 떨어진 곳으로 확인됐습니다.

S/U) 위대한 독립 운동가에게 남은 것은 현재
2미터 남짓의 이 표지목이 전부입니다. 이 표지목은 현재 군부대 안에 있습니다.

군부대 협조로 부대 안에 표지목을 세운 사업회는 부대 이전시, 해당 부지에 독립 박물관을 만들 계획입니다.

이와 함께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대한민국장으로 상향시키기 위한 작업도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INT▶

명확한 조사를 통해 독립운동가들이
합당한 대우를 받게 하는 일.

3.1절 100주년인 올해까지도
미완성 상태로 남아 있습니다.
엠비시 뉴스 이재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