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드니 저도 어쩔 수 없이 권위적이고 보수적인 꼰대가 되어가는 것 같아요. 여지껏 반백을 넘겨 살며 농담으로라도 '쓰-읍, 어디 여자가...' '여자란 모름지기...' 따위의 말을 입밖에 내본 적이 없었는데, 글쎄 어젯밤 아내에게 그 말을 내뱉고 말았네요. 일마치고 들어와 보니 아내가 빨래를 개고 있더라구요. 그래서 한소리 했지요.
- 각도 못잡는 여자가 어디서 빨래를 개키겠다고 나서, 나서길.. 저리비켜! 티셔츠는 가로25 높이1센티로.. 속옷이나 양말은 요로케요로케 주머니를 만들어서 쏘-옥...
돌아보니, 없네요. 군대에서 배운 각잡는 법은 알려주지 말아야 겠어요. 그건 남자들의 자존심 이니까요..
그러고는 식탁불빛 아래서 장사익의'봄날은 간다'를 작게 들으며 막걸리를 마시고 있는데, 아내가 불쑥 나오더니 설거지를 해주겠다 하는 거예요. 또 참지못하고, 어디 여자가 새벽에 접시 부딪치는 소리를 내려 하냐며 얼른 들여보냈죠. 역시 인상을 쓰니 고분고분 말을 잘 듣더군요.
문제는 오늘 아침이었어요.
아내가 아들에게 재활용 쓰래기를 버리라고 시키더군요. 제가 버럭, 화를 냈지요. 이제는 나의 즐거운 주말아침 루틴마저 방해할 셈이냐고, 너무 심한거 아니냐고.. 아마 무서웠을 겁니다. 아들에게 빼앗길까 얼른, 종이컵을 앞니로 물고 양손에 재활용 쓰래기를 들고 분리수거장으로 나왔지요. 믹스커피에 담배 한대 피우러 나온건데 아마 아내는 절대 모를 거예요. ㅎ
분리수거장엔 저처럼 호통을 치고 나오신 분들이 계시더군요. 눈인사라도 건넬까 싶었는데 모두들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먼 산만 바라보고 계시네요. 갑자기 눈앞이 흐려지는 건 담배연기 탓이겠죠?
시선을 조금 더 들어 하늘을 바라보며 주일아침, 분리수거장 옆에서 두손을 모읍니다.
모쪼록 제 또래의 보수적 꼰대들이 '중'년의 '꺾'이지 않는 '가'오와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신의 가오'가 함께 하기를 짧게, 기도 드립니다. 얼른 올라가서 뜨거운 드립커피와 뜨거운 프렌치토스트로 뜨겁게 혼쭐을 내줘야 하거든요.
아, 갑자기 거칠고 강인한 뱃남자들의 노래가 듣고 싶네요.
* 나단 에반스 - 'Weller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