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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쿠나마타타

사연과 신청곡
23-03-27 12:2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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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들 놀라셨죠? 저도 정말 많이 놀랐습니다.
사실 첨엔 집을 뛰쳐 나갈 생각은 아니었어요. 조실부모하고 사고무탁인 마당에 사춘기라 잔뜩 예민한데, 옆집 캥거루와 라마가족의 깨복는 단란함에 배알이 꼴리기도 하고 또 봄이라고 커플룩에 희희낙락 인간들은 왜 그리 몰려 드는지... 도대체 서럽고 외로운 내 신세를 알기나 하는 건지...
아, 저 세로예요. 얼룩말 세로.
어쨌든, 어찌어찌 하다보니 울타리 밖으로 나오게 됐고 그냥 답답한 마음에 숨 찰때까지 달려나보자, 하는 맘이었는데... 웬걸요, 아차, 싶었죠. 딱딱한 도로와 끊임없는 자동차, 높은 건물들, 꽉막힌 골목, 나를 피해 달아나던 인간들... 아, 이곳이 아빠가 말하던 인간들이 사는 정글이구나, 그래서 엄마가 집 나가면 개고생은 커녕 개죽음을 당할수도 있으니 답답해도 이곳에서만 놀라고 하셨구나... 부모님께선 냄새와 바람으로 길을 찾으라 하셨는데, 그 길위에 위태롭게 서 있던 저에겐 역한 바람이 눈앞을 가로막았던것 같아요.
그렇게 잠깐 방황의 해프닝을 끝내고 잠들었다 깨보니 집이네요. 제 걱정에 울먹이는 사육사님을 보니 쬐끔 죄송하긴 하네요. 순식간에 스타가 됐다고, 저의 한도초과 귀여움과 천진스러움에 많은 인간들이 심장어택을 당하고, 잘 자라길 응원한다고 전해듣긴 했습니다만, 흥, 칫, 뿡, 관심끄세요. 전 사춘기 소녀란 말이예요. 그리고 사실, 기쁜 내색은 안했지만 귀가 솔깃한 얘기도 들었어요. 조만간 남자 친구를 소개시켜 준다네요. ㅋ. 아.. 어떤 놈이 올까? 갈기는 멋질까? 무늬는 강렬할까? 허벅지는 튼실할까? 살짝 설레네요.
 
그건 그렇고 집으로 돌아온 날부터 자꾸만 이상한 꿈을 꿔요. 한없이 드넓은 초원 끝으로 붉은 노을이 하늘을 태우는데, 그 불길을 향해 수많은 얼룩말이 휘몰아 달리는 꿈이요. 거기에는 저도 엄마도 아빠도 친구들도 보여요. 그곳이 아빠가 말하던 세렝게티 사바나 일지도 모르겠어요.
 - 세로야, 편하게 살기보다는 멋지게 살아야 해. 너에게 별들로 가득한 초원의 새벽을 앞발로 찍고 뒷발로 밀어내며 눈부신 태양을 향해 달리는 꿈과 용기가 함께하길.. 걱정하지마, 다 잘될거야. 하쿠나마타타...
아빠가 저에게 마지막으로 건넨 말이예요. 이제 저는 울지 않을 거예요. 꿈도 꾸고 용기도 키울거예요.
저의 안녕과 건강을 응원해 주신 분들, 문명의 정글에서 방황하는 분들, 자신을 둘러싼 울타리를 부수고 가시덤불을 헤치고 초원 위에서 포효하고 싶은 분들, 함께 주문을 외워 보자구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다 잘 될거예요. 하쿠나마타타 하쿠나마타타...
 
 * 라이온킹OST -- `Can You Feel The Love Ton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