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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혹동화

사연과 신청곡
23-01-01 11:22:23
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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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뒤 삼복더위를 피해 숲에 왔어요. 웃자란 토끼풀밭에 누워 함박눈송이 같은 토끼풀꽃으로 그녀를 위한 꽃반지를 엮고 있을 때였어요. 난데없이 나타난 분홍눈의 하얀토끼가 회중시계와 저를 번갈아 보더니,
- 이런, 큰일났군. 이러다간 늦겠어. 어여 따라오쇼!
혼잣말처럼 툭, 뱉어내고 갑니다.
- 저...저기요, 저는 앨리스가 아닌데요...?
- 당신 아직도 호기심 가득한 토끼눈으로 이곳저곳 기웃거리잖소... 잔말 말고 따라와요!
얼마 못 가, 발을 헛 디딘 저는 토끼굴에 빠져 데굴데굴 구르고 굴러, 쿵!
얼마나 지났을까... 겨우 정신을 차린 저의 흐릿한 눈과 귀로 갖가지 차림을 한 토끼들의 토크가 들려왓습니다.
* 술을 끊어야 할까봐요, 숙취 때문이었다구. 뛰다보니 속이 울렁거려서 잠깐 누워 쉰다는게 그만... 그 봉우리 바위에서 다리를 꼬고 앉아 나를 비웃던 거북이 녀석을 생각하면 아직도 울화가 치밀어...!
*난 갱년기가 왔나봐요, 자꾸 깜박깜박 해. 아, 글쎄 오늘 아침엔 눈 비비고 일어나 세수하러 옹달샘에 갔다가 물만 먹고 왔지 뭐야, 허허허...
* 말도 마쇼. 난 나비넥타이 메고 남세스런 종이책 표지모델 한 지 70년이나 됐다우. 이젠 '보이'도 아니고 주변에서 '플레이 그랜파'라 놀려대는 통에 손주들 보기도 민망하고... 그만두려 해도 그눔에 흑역사가 곳곳에 박제 돼 있어서 공공근로도 나갈 수 없고... 에-휴~
*저는 그 옛날 간 빼놓고 왔다고 거짓말 한 게 들통나 도망다니다가, 기어코 잡혀갔다 겨우 살아왔어요. 닌자 거북이들을 용병으로 보냈더라구요. 내 아무리 날쌔도 그놈들 당해낼 재간이 있나, 원. 죽었구나...하던 차에 얼마 전 물의 나라로 이주한 나비족의 도움으로 간신히 빠져 나왔지요. 그 종족은 고양이를 닮아 나비족인가 봐요. 용왕님 앞에서 '하악질'도 하더라니까요...
 
쎄-한 느낌에 돌아보니 나비족을 닮은 인간이 나를 향해 '하악질'을 토해내고 있었다.
- 새벽에 만취가 되어 들어오시더니 아주 눈이 벌-건게 토기눈 같구료~ 취해서 저지른 만행은 기억이나 나실런지...
- 만행이라니...?
- 화내는 나한테 '하입보이'를 들려주며 애절한 눈빛으로 '버니즈'에 가입하고 싶다고 했잖아욧!!
 
아들과 아내는 아바타를 향해 넓디넓은 3D세상으로 떠났습니다. 엽기토기 마시마로처럼 처진 눈으로 새해 아침을 맞이한 아저씨는, 식사는 없어 배고파도 음료는 없어 목말라도 시원한 동치미, 동치미 국물만 원하게 될 걸 알고 있었죠...
 
  --제이레빗 'Happy Thing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