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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의 요리

사연과 신청곡
22-10-24 11:3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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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출 하시죠? 오후의 요리를 시작해 볼까요?
오늘은 칼질 한번 배워 본 적 없다는 조든램지씨 모셨습니다.
- 네, 오늘은 간단한 생일상차림입니다.
* 먼저 미역국입니다. 잘불린 미역에 고기대신 표고, 토란이나 옹심이, 쌀뜨물, 거피들깨가루를 넣고, 간은 슴슴하게 고듯이 끓이면 사찰식 미역국이 됩니다. 밥없이 먹어도 든든합니다.
* 다음은 빠질수 없는 잡채. 잡채는 어렵다기보단 귀찮음 그 '잡채'이지요. 그런데 살다보니 어려운 일을 잘하는 것보다 귀찮은 일을 잘하는 것이 중요하더군요. 어쨌든, 부추나 시금치 대신 공심채와 꽈리고추를 고추기름과 굴소스로 재빠르게 볶아내 섞으면 색다른 식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 재워놨던 등갈비는 조린후, 에어프라이어나 오븐으로 겉바속촉, 발사믹소스와 꿀을 이용하면 저세상 맛! (방송에서 쉐프들이 꿀없으면 물엿, 없으면 설탕도 무방하다는 말은 믿으면 안됨)
* 상큼한 겉절이 추가요.. 맘대로 하되, 찹쌀풀, 참치액, 매실액, 홍시로 감칠맛, 단맛 내기. 홍시는 장금이만 알아챌 정도로 넣는게 킬포!
* 여기서, 어쩌다 주부아저씨의 야매요리 팁 하나.. 음식 하실 때 시중에 나온 소스류, 조미료 잘 활용하시고, '적당량'의 '적당'을 터득하면 아내가 밥상 엎을 일 없음!
 
이제, 이렇게 급히 만든 음식을 '스뎅찬합'에 담아 그녀에게로 갑니다.
그녀...
그녀...
 
언제나 내 편인 지구상 유일한 생명체.
오십넘은 맏사위 보다도 굵은 손마디로 메마른 땅에 쳐 박힌 옥수수 뿌리처럼, 삶을 움켜쥐고 살아 온 사람.
난 됐어... 난 괜찮다니까... 난 신경쓰지 않아도 돼... 란 말이, 자율신경계를 타고 흐르는 사람.
누군가의 아내이고 누군가의 며느리고 또, 누군가의 고모이고 할머니이고 이웃이지만... 그 모두에게 엄마같은 사람.
가제손수건 같은 심성으로 그들의 눈물, 콧물을 닦아 주고 생채기를 감싸 주느라 얼룩진 그 손수건을... 당신의 눈물로 빨아... 한숨으로 말리며 살아 온 사람.
 
내 아내의 어머니 이지만, 내가 엄마라고 부르고 싶은 사람...
 
내 삶이 시작되기 전, 별은 별 같았고 불어오는 바람엔 행간이 없던 그 시절... 홍천군 두촌면 철정리 어느 골짜기... 흙담벽 돌아핀 보라빛 도라지 꽃망울을 '뽁' '뽁' 터뜨리며 채송화 처럼 웃고 있었을, 그 소녀의 70번째 생일을 축하드립니다.
 
    --- '소녀와 가로등'  진미령 Origin. ver.
 
** 6년째 항암중이신 장인의 입원으로 간병중이십니다. 어제 날짜로 준비 해왔던 칠순 잔치도 당연히 무산됐구요. 당신은 팔자려니, 하십니다. 이 글 들으시면 한번 웃으시겠죠? 아, 음식은 레알 제 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