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이나 신발을 잘 사지 않습니다.
사내놈이라 그렇고, 양복이나 멋드러진 옷이 일과 관련 없어서라는 데는 조금, 넉넉치 못해, 게다가 까탈스러워 딱 내거야, 하는 아이템을 찾기 어려워서라는 데는 많은 부분 인정 합니다. 가짓수가 적으니 착장의 고민도 거의 없고, 가득한 옷가지들을 헤집으며 한참을 거울 앞에서 대 보다가 '입을 옷이 없네...' 라며 툴툴거릴 일도 없습니다.
딸, 아들이 한창 자랄때는 철마다 사들이는 옷,신발 가격에 한숨쉬며 등허리를 두드렸지만, 이젠 다 자란듯 하여 한숨 돌리나 싶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엄마, 아빠 옷에 손을 대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젊은 시절부터 어쩌다, 재미삼아 찾는 광장시장, 평화시장, 동묘 구제거리에서 유물 발굴하듯 뒤져내 득템한 빈티지 진, 올드스쿨 스웻셔츠, 클래식한 더플코트, 물빠진 야상점퍼가 그들의 옷장에서 발견되기 일쑤입니다. 아내는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도 없는옷을, 게다가 50이 넘어 찢어진 청바지를 입는다고 핀잔을 주지만, 오늘은 내 손에 들어온 지 20여 년이 다 되가는 빈티지 찢청과 카멜 떡볶이코트를 아들녀석이 입고 나갔습니다. 잘 어울리니 뭐라 딱히 할 말은 없습니다. 샘나고 고맙고 흐믓합니다.
가만 보면 요즘 사람들은 '쵝오'보다는 '새삥'에 더 관심을 두는 듯 합니다.
그러다 보니 한참 쓸만한, 조금 다듬어 더 멋지게 만들 수 있는 물건도 관계도, 버리고 쌓아두고 외면하고 자꾸 새것에만 눈길을 주지요. 눈에 보이는 겉모습만으로는 그 가치를 온전히 알 수 없는데도 말이지요. 하지만 저에게는 오래 돼 광도 나지않고 흠집도 생겼지만, 함께하면 '기분이가 조크든요' 표정을 짓게되는 것이 있습니다. 누가뭐래도 딱 내것인 듯한 스웨이드 로퍼 하나, 주머니 많은 사파리 점퍼 하나, 그리고 그런 사람 하나.
수면양말처럼 포근하고 잠옷처럼 편안한 그런 사람.
오늘이 그사람 생일 입니다. 내일은 제 생일이고요. 아이들에겐 일타쌍피라 개이득이고, 저는 늘 마트묶음상품에 테이프로 감아놓은 요구르트마냥 아내생일 덤축하를 받습니다. 미역국도 하루 묵어 낡은 것을 다시 데웁니다.
그런데 여러분, 다들 아시죠?
미역국은 한번 더 끓여야 맛나다는 것을...
존레논 -- 'Oh My Love'